輔國安民 제4전시관 프롤로그

일본 서문_ 별이된 사람들

일본의 봄은 아찔하다. 만발한 벚꽃 잎이 흐드러지는 모습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완연한 봄은 초록 잎에 생기를 불어 넣으며 연중 가장 생명력 있는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봄이 아찔한 이유는 연분홍 벚꽃 잎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처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일본 땅은 상춘객의 여유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픔의 현장 아닌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곳곳에 숨어 있는 한탄스러운 설움의 역사를 목도하게 될거다.
역사의 시계를 삼국시대로 되돌리면 일본은 가깝고도 가까웠던 나라였다. 백제 무령왕 탄생지는 일본 후쿠오카 가라쓰 앞바다 가카라시마(加唐島)다. 임진왜란 뒤에는 조선 도공이 대거 넘어가 일본 도자기의 전성시대를 연다. 이때 일본으로 끌려간 이삼평은 도신 발열에 올라 일본 자기의 뿌리로 칭송받는다. 아리타 도자기가 바로 그것이다.
근현대로 오면 일본은 배움의 나라가 된다. 수많은 학생들이 선진문물을 접하기 위해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그런 일본은 침략국의 심장이기도 했다. 을사늑약부터 경술국치까지 그리고 본격 시작된 식민지 백성으로의 삶, 어떤 면에서 일본에 있던 한인들이 견뎌야 했던 차별과 멸시는 더욱 고통스러웠을지 모른다. 그 울분이 정점에 차올랐을 때쯤 도쿄에서 일본 한인 유학생 600여 명이 모여 2·8독립선언문을 낭독한다. 적의 심장 한가운데서 우리 민족의 기개가 살아 있음을 각인시킨 일대 사건이었다. 2·8독립선언은 3·1운동을 점화시키는 도화선이 되고 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봉창은 일찍이 일본인이 경영하는 상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갖은 수모를 겪는다. 식민지 백성이 필연적으로 경험해야 했던 모진 홀대와 모욕은 나라 없는 슬픔이 무엇인지 뼈 속 깊이 각인한다. 결국 이봉창은 김구를 찾아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1932년 1월 8일 적의 심장 도쿄에서 일왕이 탄 마차에 폭탄을 투척,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그의 나이 32살 때 일이다. 비록 거사는 실패했지만 이봉창 의거는 윤봉길 의거의 밑거름이 된다. 특히 윤봉길 의거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내는 결정적 계기로 작동하며 침체에 빠져 있던 독립운동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하지만 윤봉길은 의거 직후 상해에서 고초를 겪다 그해 11월 오사카로 압송된다. 그리고 다시 일본 육군 9사단 본부가 있던 가나자와로 보내져 1932년 12월 19일 미간에 총탄을 맞고 절명한다. 일제는 윤봉길의 유해를 전몰자묘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암매장했다. 그의 나이 25살 때 일이다.
평생 한글로만 시를 썼던 시인 윤동주는 1943년 7월 귀국을 생각하던 중 항일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2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다. 일제는 그를 생체실험 도구로 사용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결국 윤동주는 1945년 2월 차디찬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8살 꽃다운 나이에 눈을 감는다. 윤동주가 한 달 정도만 더 살았더라면 감옥 창살 사이로 하얀 벚꽃 잎이 날아들었을 텐데, 그 봄기운을 받아 조금만 더 힘을 냈더라면 광복 소식을 들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들게 하는 현장은 일본인들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위안이라면 후쿠오카에서 윤동주 순국일 쯤 추모행사가 열린다는 정도다.
그럼에도 일본 땅에서 가장 비애감 짙은 장소는 이름 석자 조차 남기지 못하고 원수의 땅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징용자들의 흔적이다. 어떻게 해서든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는 족쇄에 채워져 옴짝달싹 할 수 없었던 사람들, 살아서는 강제적으로 일본을 위해 영육을 갈아넣어야 했고, 죽어서는 철저하게 존엄이 훼손된 채 아무렇게나 매장돼야 했던 조상들, 우리에게 일본은 그런 별들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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